SNS나 유튜브 등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이다’ 또는 ‘참교육’ 컨텐츠가 유행하고 인기를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의미를 ‘사이다’로 비유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사람에게 물리적, 법적 제재를 통해 금전적 배상을 받아내어 잘못한 행동을 행한 사람의 잘못을 일깨워 주는 행위를 ‘참교육’ 또는 ‘정의구현’이라고 지칭한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사적 제재’를 통해 공권력 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보며 통쾌함을 경험하며 열광한다.
참교육 컨텐츠는 이웃 간의 주차문제, 청소년들의 음주와 흡연 등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부추겨 제작되고 공유된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에서는 ‘딸배 참교육’이라는 영상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 ‘딸배’라는 말은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를 의미하는 은어이며, 교통법규를 위반한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를 끝까지 추격하여 잘못을 추궁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SNS를 통해 공유되는 참교육 영상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공개되지만, 거리의 표지판과 주변 지형등을 유추하여 잘못한 행위를 행한 당사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온라인 인플루언서와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언쟁을 넘어 폭행까지 이어져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이러한 참교육 컨텐츠를 접한 네티즌들은 “경찰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서 사이다를 마신 것 같이 통쾌하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참교육에 대한 행동을 칭송하는 반면, “금전적 후원을 받기 위해 갈등을 소재로 흥미 위주의 컨텐츠를 제작하여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기만 할 뿐 이다"라는 의견이 분분히 갈라진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중의 목마름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영웅심리가 드러난 사적인 복수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사적 제재가 심화된다는 것은 개인주의가 극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지극한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법과 윤리를 통한 관계적인 타협 보다는 폭력과 분노가 더욱 앞서는 사회가 될 것이다. 폭력과 분노는 결코 정의를 구현하는 지혜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 현장을 보는 순간에는 잠시 통쾌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지속될 경우에는 갈등을 해결할 준거들이 점점 사라져 용서와 관용을 통한 관계의 회복의 기회를 상실할 것을 염려한다. 성숙한 문제해결의식은 폭력이 아닌 용서와 사랑을 통한 따뜻한 정서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SNS나 유튜브 등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이다’ 또는 ‘참교육’ 컨텐츠가 유행하고 인기를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의미를 ‘사이다’로 비유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사람에게 물리적, 법적 제재를 통해 금전적 배상을 받아내어 잘못한 행동을 행한 사람의 잘못을 일깨워 주는 행위를 ‘참교육’ 또는 ‘정의구현’이라고 지칭한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사적 제재’를 통해 공권력 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보며 통쾌함을 경험하며 열광한다.
참교육 컨텐츠는 이웃 간의 주차문제, 청소년들의 음주와 흡연 등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부추겨 제작되고 공유된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에서는 ‘딸배 참교육’이라는 영상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 ‘딸배’라는 말은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를 의미하는 은어이며, 교통법규를 위반한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를 끝까지 추격하여 잘못을 추궁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SNS를 통해 공유되는 참교육 영상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공개되지만, 거리의 표지판과 주변 지형등을 유추하여 잘못한 행위를 행한 당사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온라인 인플루언서와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언쟁을 넘어 폭행까지 이어져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이러한 참교육 컨텐츠를 접한 네티즌들은 “경찰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서 사이다를 마신 것 같이 통쾌하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참교육에 대한 행동을 칭송하는 반면, “금전적 후원을 받기 위해 갈등을 소재로 흥미 위주의 컨텐츠를 제작하여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기만 할 뿐 이다"라는 의견이 분분히 갈라진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중의 목마름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영웅심리가 드러난 사적인 복수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사적 제재가 심화된다는 것은 개인주의가 극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지극한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법과 윤리를 통한 관계적인 타협 보다는 폭력과 분노가 더욱 앞서는 사회가 될 것이다. 폭력과 분노는 결코 정의를 구현하는 지혜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 현장을 보는 순간에는 잠시 통쾌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지속될 경우에는 갈등을 해결할 준거들이 점점 사라져 용서와 관용을 통한 관계의 회복의 기회를 상실할 것을 염려한다. 성숙한 문제해결의식은 폭력이 아닌 용서와 사랑을 통한 따뜻한 정서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김남건 기자 nkeo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