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_이요한 목사
Q. 쉐이커스와 기쁨의 교회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역에 집중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한국 교회를 돕자라는 차원이 컸습니다. 기쁨의 교회 역시도 우리 표어가 교회 중의 교회거든요. A church for church, 그러니까 교회들을 위한 교회가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교회는 그냥 청년들이 모여서 만드는 교회이고 젊은이들이 하는 교회인데 복음적인 일들을 감당하는데도 정말 줄어들지 않고 진짜 역동적으로 일하고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키워드 속에서 청년들이 해야 할 수 있는 일을 단체로 말하면 쉐이커스고 또 교회적으로 풀자면 기쁨의 교회라고 하는 모델을 여기 서울 도심 가운데 세워서 여기에서 이제 뭔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차원으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쁨의 교회는 처음부터 청년 교회지만, 청년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단순히 연령에만 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연령이 젊은 교회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청년처럼 일할 수 있는 교회였으면 좋겠다. 보장된 무언가가 아니라 모험적인 사역, 현실이나 상황보다는 우리가 가져야 할 이상, 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분명한 가치 이런 것들을 위해서 좀 치열하게 분투하는 교회로 세워가자라는 취지로 교회를 세우게 됐어요.
Q. 쉐이커스를 통해 목사님께서 이루고 싶으신 비전은 무엇인가요?
쉐이커스 주제 말씀이 고린도 후서 4장 5절 이거든요.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너희의 종된 것을 전하느니라" 라는 말씀인데 너무 멋있는 말인게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도 바울의 사역팀은 언제 나 교회에 대해서 갖는 마음이 주인 의식이 없어요. 대신에 그 교회에 대한 영적 책임을 지되 그 교회와의 관계에서 나는 너희들을 돕는 종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너희를 돕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쉐이커스를 통해서 제 일 바라는 것은 최소한 쉐이커스를 통해서 예수님이 전해지고 그 가운데서 교회들이 살아나는거, 특별히 작은 교회들이 살아나는 게 저희에게 있어서는 궁극적인 목표 같아요.
Q. 결혼과 출산이 가지는 기독교적 가치도 물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이 따르는 일인만큼 여러가지 실질적 지원들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교회에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신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신과 문화,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혼은 삶의 일부죠.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가 됐는데 그 시작과 끝 지점을 우리가 어떻게 채워나갈 거냐. 그걸 채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배우자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성 과 연애에 대해서 다루어주고 이런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교회에서는 그런 얘기를 아무도 안 해줘요.
우리가 단순히 기독교적 가치는 결혼, 이성 간의 결혼을 지지하고 이것에 대해서 긍정한다가 아니라 진짜 가정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심지어 나는 이 가정을 비전으로 삼아도 될 만큼 가정이 가치 있는 것이구나 이러한 것들을 교회들이 주지 못했다는 거죠. 창조질서를 내 삶에 적용해 가는 그 과정, 그걸 왜 적용해야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그리고 실제적으로 집이나 직장같이 결혼까지 가는 여정이 어떤것인 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는 별로 말을 안 했어요. 또한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 삶에 다가와야 하거든요. 우리는 청년들이 결혼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 공동체를 보면서 청년부 친구들이 도전을 받아서 조금씩 그 공동체로 더 많이 유입이 되고 있는 거예요. 이를 거치면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들이 많고 가정들이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고 기쁨으로 있을 수 있구나를 몸으로 보여주는거죠.
Q. ‘청년 복음화’라는 목표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또는 추구해야 될 목표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상 정립 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청년 복음화 라고 하는 목표는 모든 교회가 동일하게 갖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를 위한 방법론이라는 건 그 시대에 따라 다르고 문화에 따라 다르단 말이죠. 근데 이제 코로나 때 문에 2년 6개월 이상 올스톱을 딱 했단 말이에요. 사실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젊은이들한테 되게 긴 시간이어서 그 이전 교회가 기억이 안 나요. 이걸 어떻게 다시 세워갈 거냐가 진짜 진짜 포인트에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바른 교회상은 결국 새로운 경험을 주는 교회겠죠. 그런데 이 새로운 경험이 아주 건강하게 균형 있 게 또한 지적 차원과 더불어서 경험적 차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거 회복하지 않고 머리로만 믿는 건 반드시 무너져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통합적인 섬김, 사역, 예배, 훈련, 공동체, 이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줄 수 있는 교회를 통해서 건강한 크리스찬이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총신의 청년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 을까요?
그냥 대중적으로 복음 전하고 예수님 믿으세요. 이 시대가 지났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동안 한국 교회가 보여줘왔었던 불신적인 모습이 너무 많아요.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 들이 “너 나 사랑해서 하는 말 아니지”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이번에 ‘수리남’을 보면 거기 목사가 마약상이에요. 근데 그게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에요. 요즘 목사가 좋은 걸로 나오는 미디어가 없어요. 기껏해야 천주교 신부 정도만 긍정적으로 그려져요. 그래서 제가 꼭 말해주 고 싶은건 총신 청년들이 자기 교회로 친구들을 초청하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 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들은 그런 청년들이 와서 배울 수 있는 또 그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들을 품어야죠.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이 관종처럼 시선 끌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식으로 복음을 전한 적이 없어요. 인격적 접촉면이 있어야 돼요 그냥 막 전하는거 불가능해요.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 한국 사회 안에서는 교회를 복음적 교회로 만들어 놓고 청년들이 교회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그런 거면 너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젊은 청년들이 신앙을 가지면서도 정작 교회는 떠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 금합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요. 왜냐면 교회가 더이상 청년들을 붙잡을 수 가 없어요. 설교 10번이면 8~9번은 잘 믿어라, 거룩해라, 그다음에 최선을 다해라 이런 것인데 그게 수직적인 거예요. 문제는 교회가 수평적일 때 사람들이 모이거든요. 이 수평적 관계를 토대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거고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결국 공동체 문제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사실 청년들이 공동체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이 공동체가 다양한 청년들을 못 담는 거죠.
일단 제일 중요한거는 커뮤니케이션이 없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어떻게 보면 일방성이죠.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그 일방성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청년들도 충분히 들어가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뭔가 해결하고 싶어 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교회를 떠나면 마치 모든 걸 떠난 것처럼 정죄하고 이런 분위기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에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교회를 떠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잠시 쉬면서 회복하는 그런 로뎀 같은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 현재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상호 간 가치관의 갈등(성별, 인종 등등)이 심한 사회입니다. 이는 기독 청년들도 예외가 아닌데요. 목사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가치관의 충돌은 단적으로 말해 세계관의 충돌입니다, 세계관의 충돌은 원래부터 있어왔던 건데요. 중요한 건 기독 청년들 안에서의 충분한 세계관의 적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청년들이 ‘나 기독교 세계관 더 알고 싶어’, ‘이게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줄 거야’, ‘기독교 세계관이 내 직장에도 도움이 될 거야’ 아무도 그렇게 안 생각해요. 그러면 뭐냐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쳐야죠.
그런데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궁금해 해야하거든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끈 이유도 사람들이 정의에 관해서 궁금해하던 차에 그 책이 나와서 같이 토론하고 하면서 히트친 것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처음부터 ‘기독교 세계관 개론’ 이렇게 딱딱하게는 말고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관의 충돌 이야기를 다시 하면요. 가장 대표적으로 지금 이슈인 세계관은 젠더 혁명을 들 수 있죠. 사실 이전에도 동성애 라는 건 있었어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 들어서 이 성소수자 문제가 정치적 투쟁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그게 교회와 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반동성애 시위에 가장 앞장선건 기독교인이에요. 그런데 놀라운거는 그 퀴어축제의 선두에 선 것도 ‘무지개예수’라는 기독교 단체에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 나가서 반대하는 사람도 문제고 나가서 주도하는 사람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한 일개 시민으로 서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요. 그런데 그 것이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인 것처럼 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봤을때는 양측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서 자기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냐? 결국은 성경만이 답이죠. 그리고 저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걸 가장 잘하는 것은 우리 개혁주의고 총신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건 개혁주의가 가장 잘 하거든요. 가령 오병이어만 해도 그걸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먹을걸 나눴다. 그래서 우리도 가진걸 나눠야 한다’고 하는데 물론 그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결국 이러한 접근법은 살아계셔서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거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걸 해체하고 부정합니다. 그런데 다 거부하고 불명확하고 그 러면 ‘우리는 어떤걸 믿고 누군가에 의지해야 할까’는 문제는 답을 못해줍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뭐냐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원하거든요. 오늘날 우리가 살아계셔서 정의롭고 은혜로우시고 죄가 없으신, 그리고 우리에 대한 선한 마 음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의 지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비난받거나 초라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냐 절대 아니에요.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께 서 우리 가운데 주신 계시가 참되고 유일 한 계시다’라고 하는 분명한 그 반석 위에 서서 우리가 그 위에다가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총신대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싶으신가요?
총신대학교 학생들에게 제가 해 주고 싶은 얘기는 이제는 총신대학교를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총신의 지난 역사가 사실은 빛나고 찬란한 역사였지만 또 어두웠던 시간들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어두웠던 시간들이 많았고 학교도 분쟁 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코로나가 모든 것을 리셋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 이 후배들이 느끼기에 좋은 학교, 학생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학교로 만들 수 있다 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총신대학교를 새롭게 세워가는 새로운 시대의 느헤미야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세워봐 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다시 예배부터 세워가고 각 학과 마다, 공동체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게 뭘까 하는 치열한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한 학업에도 열중하면서 학교를 명문학교로 세워 달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취재 및 정리 총신대보 일동
출처_이요한 목사
Q. 쉐이커스와 기쁨의 교회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역에 집중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한국 교회를 돕자라는 차원이 컸습니다. 기쁨의 교회 역시도 우리 표어가 교회 중의 교회거든요. A church for church, 그러니까 교회들을 위한 교회가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교회는 그냥 청년들이 모여서 만드는 교회이고 젊은이들이 하는 교회인데 복음적인 일들을 감당하는데도 정말 줄어들지 않고 진짜 역동적으로 일하고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키워드 속에서 청년들이 해야 할 수 있는 일을 단체로 말하면 쉐이커스고 또 교회적으로 풀자면 기쁨의 교회라고 하는 모델을 여기 서울 도심 가운데 세워서 여기에서 이제 뭔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차원으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쁨의 교회는 처음부터 청년 교회지만, 청년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단순히 연령에만 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연령이 젊은 교회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청년처럼 일할 수 있는 교회였으면 좋겠다. 보장된 무언가가 아니라 모험적인 사역, 현실이나 상황보다는 우리가 가져야 할 이상, 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분명한 가치 이런 것들을 위해서 좀 치열하게 분투하는 교회로 세워가자라는 취지로 교회를 세우게 됐어요.
Q. 쉐이커스를 통해 목사님께서 이루고 싶으신 비전은 무엇인가요?
쉐이커스 주제 말씀이 고린도 후서 4장 5절 이거든요.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너희의 종된 것을 전하느니라" 라는 말씀인데 너무 멋있는 말인게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도 바울의 사역팀은 언제 나 교회에 대해서 갖는 마음이 주인 의식이 없어요. 대신에 그 교회에 대한 영적 책임을 지되 그 교회와의 관계에서 나는 너희들을 돕는 종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너희를 돕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쉐이커스를 통해서 제 일 바라는 것은 최소한 쉐이커스를 통해서 예수님이 전해지고 그 가운데서 교회들이 살아나는거, 특별히 작은 교회들이 살아나는 게 저희에게 있어서는 궁극적인 목표 같아요.
Q. 결혼과 출산이 가지는 기독교적 가치도 물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이 따르는 일인만큼 여러가지 실질적 지원들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교회에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신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신과 문화,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혼은 삶의 일부죠.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가 됐는데 그 시작과 끝 지점을 우리가 어떻게 채워나갈 거냐. 그걸 채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배우자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성 과 연애에 대해서 다루어주고 이런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교회에서는 그런 얘기를 아무도 안 해줘요.
우리가 단순히 기독교적 가치는 결혼, 이성 간의 결혼을 지지하고 이것에 대해서 긍정한다가 아니라 진짜 가정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심지어 나는 이 가정을 비전으로 삼아도 될 만큼 가정이 가치 있는 것이구나 이러한 것들을 교회들이 주지 못했다는 거죠. 창조질서를 내 삶에 적용해 가는 그 과정, 그걸 왜 적용해야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그리고 실제적으로 집이나 직장같이 결혼까지 가는 여정이 어떤것인 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는 별로 말을 안 했어요. 또한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 삶에 다가와야 하거든요. 우리는 청년들이 결혼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 공동체를 보면서 청년부 친구들이 도전을 받아서 조금씩 그 공동체로 더 많이 유입이 되고 있는 거예요. 이를 거치면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들이 많고 가정들이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고 기쁨으로 있을 수 있구나를 몸으로 보여주는거죠.
Q. ‘청년 복음화’라는 목표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또는 추구해야 될 목표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상 정립 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청년 복음화 라고 하는 목표는 모든 교회가 동일하게 갖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를 위한 방법론이라는 건 그 시대에 따라 다르고 문화에 따라 다르단 말이죠. 근데 이제 코로나 때 문에 2년 6개월 이상 올스톱을 딱 했단 말이에요. 사실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젊은이들한테 되게 긴 시간이어서 그 이전 교회가 기억이 안 나요. 이걸 어떻게 다시 세워갈 거냐가 진짜 진짜 포인트에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바른 교회상은 결국 새로운 경험을 주는 교회겠죠. 그런데 이 새로운 경험이 아주 건강하게 균형 있 게 또한 지적 차원과 더불어서 경험적 차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거 회복하지 않고 머리로만 믿는 건 반드시 무너져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통합적인 섬김, 사역, 예배, 훈련, 공동체, 이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줄 수 있는 교회를 통해서 건강한 크리스찬이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총신의 청년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 을까요?
그냥 대중적으로 복음 전하고 예수님 믿으세요. 이 시대가 지났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동안 한국 교회가 보여줘왔었던 불신적인 모습이 너무 많아요.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 들이 “너 나 사랑해서 하는 말 아니지”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이번에 ‘수리남’을 보면 거기 목사가 마약상이에요. 근데 그게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에요. 요즘 목사가 좋은 걸로 나오는 미디어가 없어요. 기껏해야 천주교 신부 정도만 긍정적으로 그려져요. 그래서 제가 꼭 말해주 고 싶은건 총신 청년들이 자기 교회로 친구들을 초청하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 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들은 그런 청년들이 와서 배울 수 있는 또 그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들을 품어야죠.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이 관종처럼 시선 끌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식으로 복음을 전한 적이 없어요. 인격적 접촉면이 있어야 돼요 그냥 막 전하는거 불가능해요.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 한국 사회 안에서는 교회를 복음적 교회로 만들어 놓고 청년들이 교회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그런 거면 너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젊은 청년들이 신앙을 가지면서도 정작 교회는 떠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 금합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요. 왜냐면 교회가 더이상 청년들을 붙잡을 수 가 없어요. 설교 10번이면 8~9번은 잘 믿어라, 거룩해라, 그다음에 최선을 다해라 이런 것인데 그게 수직적인 거예요. 문제는 교회가 수평적일 때 사람들이 모이거든요. 이 수평적 관계를 토대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거고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결국 공동체 문제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사실 청년들이 공동체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이 공동체가 다양한 청년들을 못 담는 거죠.
일단 제일 중요한거는 커뮤니케이션이 없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어떻게 보면 일방성이죠.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그 일방성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청년들도 충분히 들어가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뭔가 해결하고 싶어 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교회를 떠나면 마치 모든 걸 떠난 것처럼 정죄하고 이런 분위기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에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교회를 떠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잠시 쉬면서 회복하는 그런 로뎀 같은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 현재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상호 간 가치관의 갈등(성별, 인종 등등)이 심한 사회입니다. 이는 기독 청년들도 예외가 아닌데요. 목사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가치관의 충돌은 단적으로 말해 세계관의 충돌입니다, 세계관의 충돌은 원래부터 있어왔던 건데요. 중요한 건 기독 청년들 안에서의 충분한 세계관의 적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청년들이 ‘나 기독교 세계관 더 알고 싶어’, ‘이게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줄 거야’, ‘기독교 세계관이 내 직장에도 도움이 될 거야’ 아무도 그렇게 안 생각해요. 그러면 뭐냐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쳐야죠.
그런데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궁금해 해야하거든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끈 이유도 사람들이 정의에 관해서 궁금해하던 차에 그 책이 나와서 같이 토론하고 하면서 히트친 것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처음부터 ‘기독교 세계관 개론’ 이렇게 딱딱하게는 말고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관의 충돌 이야기를 다시 하면요. 가장 대표적으로 지금 이슈인 세계관은 젠더 혁명을 들 수 있죠. 사실 이전에도 동성애 라는 건 있었어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 들어서 이 성소수자 문제가 정치적 투쟁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그게 교회와 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반동성애 시위에 가장 앞장선건 기독교인이에요. 그런데 놀라운거는 그 퀴어축제의 선두에 선 것도 ‘무지개예수’라는 기독교 단체에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 나가서 반대하는 사람도 문제고 나가서 주도하는 사람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한 일개 시민으로 서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요. 그런데 그 것이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인 것처럼 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봤을때는 양측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서 자기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냐? 결국은 성경만이 답이죠. 그리고 저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걸 가장 잘하는 것은 우리 개혁주의고 총신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건 개혁주의가 가장 잘 하거든요. 가령 오병이어만 해도 그걸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먹을걸 나눴다. 그래서 우리도 가진걸 나눠야 한다’고 하는데 물론 그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결국 이러한 접근법은 살아계셔서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거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걸 해체하고 부정합니다. 그런데 다 거부하고 불명확하고 그 러면 ‘우리는 어떤걸 믿고 누군가에 의지해야 할까’는 문제는 답을 못해줍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뭐냐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원하거든요. 오늘날 우리가 살아계셔서 정의롭고 은혜로우시고 죄가 없으신, 그리고 우리에 대한 선한 마 음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의 지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비난받거나 초라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냐 절대 아니에요.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께 서 우리 가운데 주신 계시가 참되고 유일 한 계시다’라고 하는 분명한 그 반석 위에 서서 우리가 그 위에다가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총신대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싶으신가요?
총신대학교 학생들에게 제가 해 주고 싶은 얘기는 이제는 총신대학교를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총신의 지난 역사가 사실은 빛나고 찬란한 역사였지만 또 어두웠던 시간들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어두웠던 시간들이 많았고 학교도 분쟁 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코로나가 모든 것을 리셋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 이 후배들이 느끼기에 좋은 학교, 학생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학교로 만들 수 있다 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총신대학교를 새롭게 세워가는 새로운 시대의 느헤미야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세워봐 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다시 예배부터 세워가고 각 학과 마다, 공동체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게 뭘까 하는 치열한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한 학업에도 열중하면서 학교를 명문학교로 세워 달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취재 및 정리 총신대보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