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_다일공동체
1. 간단한 자기소개 및 다일공동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일공동체 대표이자 밥 짓는 시인 최일도입니다. ‘다일공동체’는 이 땅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김과 나눔의 봉사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일공동체의 시작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줄여서 ‘밥퍼’라고 많이 말씀해 주시는데요, 배가 고파 쓰러진 ‘한 사람’에게 ‘밥’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11개국 22개 분원에서 사랑과 나눔을 하고 있으며, 매일 7,000명 이상에게 밥을 나누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료 병원을 운영하며, 해외 빈민촌에서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통해서, 해외 분원에서 일대일 아동결연이 필요한 아동을 소개해서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영상을 업로드 등을 하며, 다양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창립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88년 춘천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청량리역으로 갔는데, 당시 광장에서 한 노숙자 할아버지가 기차를 타러 갈 때도 뵈었고 올 때도 그 자리에 누워 계신 것을 보고, 설렁탕을 대접해 드린 것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함경도 출신 할아버지를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신학생이었던 제가 입으로만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끼 식사를 대접하면서 행동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 그 분들의 지인들까지 식사를 대접하게 되었고, 그 수가 점차 늘자 더 이상 식사대접을 못하고 라면을 끓여 드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청량리 야채시장, 청량리 쌍굴다리를 거쳐 지금의 밥퍼 건물까지 35년을 밥퍼나눔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3. 코로나-19 시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극복하셨는지요.
현재는 완화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방역당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문을 닫는 날이 길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먼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시는 어르신들을 그냥 보내야할 때, 마음이 가장 힘들고 무척 아팠습니다.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도록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밥을 나누도록 행정명령이 내려 왔는데, 바코드를 부여받지 못한 분들도 있거든요.
밥 한 끼가 생명과 같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거리의 형제들과 쪽방 어르신 등 식사를 못 하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방역당국에선 코로나 확진을 막고자, 무료급식소부터 폐쇄해야한다고 지시가 내려 왔지만, 그래도 한 끼 식사가 곧 생명이신 분들을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한다며 모여 있지는 못하나 도시락을 나누고는 속히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4. 다일공동체에서 밥퍼나눔 뿐만 빵퍼(빵나눔), 꿈퍼(교육사업), 무료병원 등의 사역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으시면 간략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35년 동안 정말 많은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기에 어떤 것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분명한 것은 단 하루도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개척하며, 선한 싸우며 지금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故 한경직 목사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저에게 남들이 칭찬하면 ‘아닙네다’ 하고 비난하면 ‘당연하디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것은 모두 함께 동역해 주신 모든 분들의 사랑과 나눔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5. 갈수록 사람들이 개인주의, 각자도생적으로 변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다같이 모여 밥을 먹는 밥퍼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밥퍼에서 도시락 배달도 해 보았지만 절반 이상의 어르신들이 밥퍼로 직접 가서 먹겠다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외로움’ 때문입니다. 그때 무의탁어르신들이 한결같이 한 이야기가 “코로나로 죽기 전, 배고파 죽겠어. 배고픔은 참겠는데 외로움은 못참겠어요.” 밥퍼를 오시는 분들에게 함께 밥 드시는 분들이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6. 밥퍼나눔 활동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인가요?
‘하나님의 이끄심’은 특정한 때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크리스천이라면 기쁠 때, 어려움을 극복할 때만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순간이 다 은혜이며 감사여야 된다고 믿습니다.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조지 뮬러’만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밥퍼나눔사역 35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사람을 세워주셨으며, 이끌어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가사 중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구절의 의미를 대신 전달하고 있습니다.
7.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기독 청년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지여작할나’,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기부를 하고 시간을 내서 현장에 가서 봉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앉은 그곳에서 함께 기도하고 응원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셔도 됩니다. 그 마음들이 쌓이면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선행을 베풀 일들이 보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포착하게 된다고 봅니다. 청년의 시기, 자신의 재능기부를 통해서 봉사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청년들 중에 여유가 되신다면, 해외 빈민촌 아동과 일대일 아동결연이 되어 한 달에 3만원을 지원하신다면, 아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고, 그 가정엔 한 달치 식량이 제공됩니다. 궁극적으로 빈민촌 아동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하라고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8. 밥퍼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들이 꾸준히 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밥퍼는 35년 동안 약 6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놀랍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무엇을 많이 가져서 봉사하고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울림을 통해서 이것이 선한 영향력을 전해서 널리 퍼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다 보니, 더욱 더 확산되는 것을 봅니다.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가 다일의 나눔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9. 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밥퍼의 많은 구성원 분들과 밥퍼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밥퍼라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간으로서 밥퍼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신혼여행을 밥퍼로 와서 봉사하고 자녀들과 매년 결혼기념일에 오시는 분도 계시고, 돌잔치와 생일 등 기념될 만한 날에 밥퍼에서 하루 식사비용을 후원하시며 봉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봉사오시는 경우도 많은데, 부모가 먼저 봉사하는 모습이야 말로 최고의 교육이지요. 특히 학교나 교회에서 사춘기 반항아 학생들이 봉사 후에 소감문을 쓰고 갔는데 봉사를 통해 변화된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미국에서는 봉사시간을 일정기간 채우면, 대통령상을 주는데 미주 다일공동체를 통해 많은 학생이 미국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35년 동안 밥퍼는 단순히 봉사하는 곳을 뛰어 넘어 배고픈 이들에게 대접하는 것뿐만 아니라, 봉사자와 후원자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더불어 만들어 왔고, 봉사활동을 발전시켰으며,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사는 기쁨을 실현시켜 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 최근에 총신대학교 학생들이 봉사를 왔는데요, 총신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각 사역현장과 목회현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청년들이 무척 부족합니다. 저 역시 MZ세대들의 특징도 알아보고,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도전하는 모습보다는 포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온전히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밥퍼는 최근 서울시에서 12년 전 지어준 임시가건물의 증축문제로 1년 내내 서울시, 동대문구청과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밥퍼는 다일공동체 모든 사역에 뿌리이기 때문에 영육 간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를 주셨습니다.
총신대학교 학생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상황이 어렵고 힘듭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잠깐입니다. 여러분을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견고하게 하시기 위한 고난임을 잊지 마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손에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청년의 때에 다일공동체 많은 사역 가운데 여러분의 나눔과 섬김의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생각나실 때, 다일공동체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늘 주님 안에서 승리하세요!
출처_다일공동체
1. 간단한 자기소개 및 다일공동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일공동체 대표이자 밥 짓는 시인 최일도입니다. ‘다일공동체’는 이 땅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김과 나눔의 봉사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일공동체의 시작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줄여서 ‘밥퍼’라고 많이 말씀해 주시는데요, 배가 고파 쓰러진 ‘한 사람’에게 ‘밥’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11개국 22개 분원에서 사랑과 나눔을 하고 있으며, 매일 7,000명 이상에게 밥을 나누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료 병원을 운영하며, 해외 빈민촌에서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통해서, 해외 분원에서 일대일 아동결연이 필요한 아동을 소개해서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영상을 업로드 등을 하며, 다양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창립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88년 춘천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청량리역으로 갔는데, 당시 광장에서 한 노숙자 할아버지가 기차를 타러 갈 때도 뵈었고 올 때도 그 자리에 누워 계신 것을 보고, 설렁탕을 대접해 드린 것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함경도 출신 할아버지를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신학생이었던 제가 입으로만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끼 식사를 대접하면서 행동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 그 분들의 지인들까지 식사를 대접하게 되었고, 그 수가 점차 늘자 더 이상 식사대접을 못하고 라면을 끓여 드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청량리 야채시장, 청량리 쌍굴다리를 거쳐 지금의 밥퍼 건물까지 35년을 밥퍼나눔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3. 코로나-19 시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극복하셨는지요.
현재는 완화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방역당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문을 닫는 날이 길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먼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시는 어르신들을 그냥 보내야할 때, 마음이 가장 힘들고 무척 아팠습니다.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도록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밥을 나누도록 행정명령이 내려 왔는데, 바코드를 부여받지 못한 분들도 있거든요.
밥 한 끼가 생명과 같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거리의 형제들과 쪽방 어르신 등 식사를 못 하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방역당국에선 코로나 확진을 막고자, 무료급식소부터 폐쇄해야한다고 지시가 내려 왔지만, 그래도 한 끼 식사가 곧 생명이신 분들을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한다며 모여 있지는 못하나 도시락을 나누고는 속히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4. 다일공동체에서 밥퍼나눔 뿐만 빵퍼(빵나눔), 꿈퍼(교육사업), 무료병원 등의 사역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으시면 간략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35년 동안 정말 많은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기에 어떤 것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분명한 것은 단 하루도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개척하며, 선한 싸우며 지금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故 한경직 목사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저에게 남들이 칭찬하면 ‘아닙네다’ 하고 비난하면 ‘당연하디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것은 모두 함께 동역해 주신 모든 분들의 사랑과 나눔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5. 갈수록 사람들이 개인주의, 각자도생적으로 변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다같이 모여 밥을 먹는 밥퍼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밥퍼에서 도시락 배달도 해 보았지만 절반 이상의 어르신들이 밥퍼로 직접 가서 먹겠다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외로움’ 때문입니다. 그때 무의탁어르신들이 한결같이 한 이야기가 “코로나로 죽기 전, 배고파 죽겠어. 배고픔은 참겠는데 외로움은 못참겠어요.” 밥퍼를 오시는 분들에게 함께 밥 드시는 분들이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6. 밥퍼나눔 활동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인가요?
‘하나님의 이끄심’은 특정한 때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크리스천이라면 기쁠 때, 어려움을 극복할 때만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순간이 다 은혜이며 감사여야 된다고 믿습니다.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조지 뮬러’만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밥퍼나눔사역 35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사람을 세워주셨으며, 이끌어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가사 중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구절의 의미를 대신 전달하고 있습니다.
7.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기독 청년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지여작할나’,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기부를 하고 시간을 내서 현장에 가서 봉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앉은 그곳에서 함께 기도하고 응원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셔도 됩니다. 그 마음들이 쌓이면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선행을 베풀 일들이 보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포착하게 된다고 봅니다. 청년의 시기, 자신의 재능기부를 통해서 봉사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청년들 중에 여유가 되신다면, 해외 빈민촌 아동과 일대일 아동결연이 되어 한 달에 3만원을 지원하신다면, 아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고, 그 가정엔 한 달치 식량이 제공됩니다. 궁극적으로 빈민촌 아동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하라고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8. 밥퍼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들이 꾸준히 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밥퍼는 35년 동안 약 6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놀랍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무엇을 많이 가져서 봉사하고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울림을 통해서 이것이 선한 영향력을 전해서 널리 퍼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다 보니, 더욱 더 확산되는 것을 봅니다.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가 다일의 나눔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9. 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밥퍼의 많은 구성원 분들과 밥퍼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밥퍼라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간으로서 밥퍼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신혼여행을 밥퍼로 와서 봉사하고 자녀들과 매년 결혼기념일에 오시는 분도 계시고, 돌잔치와 생일 등 기념될 만한 날에 밥퍼에서 하루 식사비용을 후원하시며 봉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봉사오시는 경우도 많은데, 부모가 먼저 봉사하는 모습이야 말로 최고의 교육이지요. 특히 학교나 교회에서 사춘기 반항아 학생들이 봉사 후에 소감문을 쓰고 갔는데 봉사를 통해 변화된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미국에서는 봉사시간을 일정기간 채우면, 대통령상을 주는데 미주 다일공동체를 통해 많은 학생이 미국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35년 동안 밥퍼는 단순히 봉사하는 곳을 뛰어 넘어 배고픈 이들에게 대접하는 것뿐만 아니라, 봉사자와 후원자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더불어 만들어 왔고, 봉사활동을 발전시켰으며,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사는 기쁨을 실현시켜 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 최근에 총신대학교 학생들이 봉사를 왔는데요, 총신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각 사역현장과 목회현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청년들이 무척 부족합니다. 저 역시 MZ세대들의 특징도 알아보고,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도전하는 모습보다는 포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온전히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밥퍼는 최근 서울시에서 12년 전 지어준 임시가건물의 증축문제로 1년 내내 서울시, 동대문구청과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밥퍼는 다일공동체 모든 사역에 뿌리이기 때문에 영육 간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를 주셨습니다.
총신대학교 학생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상황이 어렵고 힘듭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잠깐입니다. 여러분을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견고하게 하시기 위한 고난임을 잊지 마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손에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청년의 때에 다일공동체 많은 사역 가운데 여러분의 나눔과 섬김의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생각나실 때, 다일공동체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늘 주님 안에서 승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