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웃는남자’ 는 빅토르 위고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이다. 조커의 기괴하게 웃는 얼굴의 모티프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
17세기 영국, ‘그윈플렌’은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으로 만든 뒤 귀족들의 유희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집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웃는 모양으로 입이 찢겨진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콤프라치코스에게 버려진 그윈플렌은 마찬가지로 얼어 죽을 위기에 있던 아이를 구해 ‘데아’라고 이름 짓는다. 그 후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에게 거둬져 유랑극단에서 공연하게 된다. 소문을 듣고 공연을 보러 온 ‘조시아나’ 공작부인은 그윈플렌에게 흥미를 느껴 그를 유혹하게 된다. 그윈플렌은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로 인해 흔들리게 되는데, 그 때 눈물의 섬이라 불리는 고문소로 끌려가게 되고, 그 곳에서 본인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후 귀족이 된 그윈플렌은 본인의 삶을 생각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른 귀족들의 비웃음에 지쳐 결국 귀족의 자리를 내려놓고 본인이 일하던 극단으로 다시 돌아온다.
극의 배경이 되는 17세기의 영국은 빈부격차와 신분차별이 극에 달했던 시대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당시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으로 만들어서 귀족들에게 흥밋거리로 파는 일이 있었고, 귀족들은 아이들을 사서 질리면 서커스단에 팔아넘겼다. 인간의 생명보다 귀족의 유희가 더 중요한 시대였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 극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극의 하이라이트 넘버에서 그윈플렌은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며 귀족들에게 “연민을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호소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냉담해진 귀족들에게 실망한 그윈플렌은 ‘진짜 괴물은 당신들’이라며 일갈한다. 동시에 그는 “그런 사람들과 조금도 어울리고 싶지 않다”며 “이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라고 이야기 한다.
‘웃는남자’가 비판하는 사회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7세기 영국에서부터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은 당사자만 바뀐 채로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다. 아직도 세상은 불합리하고, 누군가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강력한 권력이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극중에서 그윈플렌이 자신과 같은 약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힘을 스스로 버리는 순간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결국 관객의 몫이다.
출처_인터파크 티켓
뮤지컬 ‘웃는남자’ 는 빅토르 위고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이다. 조커의 기괴하게 웃는 얼굴의 모티프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
17세기 영국, ‘그윈플렌’은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으로 만든 뒤 귀족들의 유희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집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웃는 모양으로 입이 찢겨진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콤프라치코스에게 버려진 그윈플렌은 마찬가지로 얼어 죽을 위기에 있던 아이를 구해 ‘데아’라고 이름 짓는다. 그 후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에게 거둬져 유랑극단에서 공연하게 된다. 소문을 듣고 공연을 보러 온 ‘조시아나’ 공작부인은 그윈플렌에게 흥미를 느껴 그를 유혹하게 된다. 그윈플렌은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로 인해 흔들리게 되는데, 그 때 눈물의 섬이라 불리는 고문소로 끌려가게 되고, 그 곳에서 본인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후 귀족이 된 그윈플렌은 본인의 삶을 생각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른 귀족들의 비웃음에 지쳐 결국 귀족의 자리를 내려놓고 본인이 일하던 극단으로 다시 돌아온다.
극의 배경이 되는 17세기의 영국은 빈부격차와 신분차별이 극에 달했던 시대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당시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으로 만들어서 귀족들에게 흥밋거리로 파는 일이 있었고, 귀족들은 아이들을 사서 질리면 서커스단에 팔아넘겼다. 인간의 생명보다 귀족의 유희가 더 중요한 시대였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 극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극의 하이라이트 넘버에서 그윈플렌은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며 귀족들에게 “연민을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호소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냉담해진 귀족들에게 실망한 그윈플렌은 ‘진짜 괴물은 당신들’이라며 일갈한다. 동시에 그는 “그런 사람들과 조금도 어울리고 싶지 않다”며 “이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라고 이야기 한다.
‘웃는남자’가 비판하는 사회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7세기 영국에서부터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은 당사자만 바뀐 채로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다. 아직도 세상은 불합리하고, 누군가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강력한 권력이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극중에서 그윈플렌이 자신과 같은 약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힘을 스스로 버리는 순간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결국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