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의 변] 경계선에 선 전달자

총신대보
2022-09-29

“말하기보단 경청하기를 나의 뜻을 내세우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연결하기를 원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는 소음에 불과하다. 그 목소리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고 어떤 간절함이 서려있던지와는 무관하게 타자에게 닿지 못하면 어떠한 유의미한 반응도 의지도 생산하지 못한다. 

총신에서 몇년간 있으면서 많은 목소리가 그저 서로 부딪히고 사라지는 광경을 보았다. 어떤 소리는 흩날렸고 어떤 소리는 자기편을 모으는 것 외에는 학교의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 없었다. 

특히 ‘단순히 목소리를 냄’에 자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큰 소리로 우리편을 모으고, 상대방에게 이 소리가 어떤 식으로 들리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나는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에 더없이 만족하고 뿌듯해하곤 했다. 지난 과거지만 나 또한 이런 부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역시 2년동안 총신에 있으면서 많은 목소리를 내왔다. 어떤 목소리는 받아들여졌고 또 다른 목소리는 배척받았다. 때로는 슬픔에 때로는 분노에 가득차 목소리를 냈다.

입대와 휴학으로 잠시 떠났던 총신을 2년만에 다시 돌아오면서, ‘소리를 냄’이라는 행위를 다시 반추해본다. 목소리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화자와 청자가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총신과 사회에서 방황하면서 가진 양방의 거리감은 결국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지금이다. 

총신의 밖에서 총신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총신의 안에서 총신을 더욱 수호하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동안 이들 사이에는 목소리, 언어 그리고 관념의 차이가 존재했다. 각자가 서로를 향해 외치는 동안 그 차이는 더욱 벌어져만 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았고 더러는 사랑하는 공동체를 떠나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더 이상 이런 슬픔이 없기를 기도한다. 

경계선에 선 자는 필연적으로 양방의 소리를 다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번역과 전달은 이러한 자들의 사명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신앙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갔다.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인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뜻을 땅의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방으로, 열방으로 예수의 뜻을 번역하며 전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나아갈 수 있었고, 이방의 수많은 타자를 포용할 수 있었다. 교회의 십자가는 대결이 아닌 포용으로 갈등이 아닌 화합의 방식으로 열방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 여정 하나하나마다. 경계에 서서 선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목소리를 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미약하지만 그 발자국에 내 발걸음을 보태고자 한다. 

이방의 경계에 선 사람으로서 그리고 총신대보사의 국장으로서, 말하기보단 경청하기를 나의 뜻을 내세우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연결하기를 원한다. 비록 내 개인은 약하고 또 부족하지만, 비천하게 태어나셔서 약한 자의 친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나아가고자 한다.


이준성 57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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